비관주의라고도 말하면 직역되는 염세주의(pessimism). 
필자의 경우 염세주의가 다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을 잘못 이해하고 신념화 한다면
우울증의 좋은 수단이 될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이것을 하나의 철학 관념으로 설명하고 자하였고
인생은 괴로움이며 이 괴로움에서 해탈하려면 쾌락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무욕의 상태
즉, 완전한 의지부정에 의해 현상세계가 무로 돌아가는 열반의 경지에 달해야 한다고  말했다.(쇼펜하우어)
해탈?열반의 세계? 그렇다 뭔가 동양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가?
감히 확대해서 말한다면 불교의 철학과 비등하지 않는가.
몇몇 염세주의자들은 인생은 살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인생론이라고한다. 
이점은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살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그 순간 자기 자신을 염세주의자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전자에 언급한 의미로써 염세주의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필자는 나만의 생각을 어필해본다.

1. 살 가치가 없다라고 느끼는 것 자체가 삶을 유지해 나가는 원동력이다.
 
 비관에 빠졋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겨내고자 하는 원동력으로 삼으면 염세주의는 하나의 필요악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도가에서 주창한 무위자연과는 정반대의 철학적 관념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의 의식을 초월한
고차원적인 자연행위'가 도가의 의미라면 '인간의 의식을 초월한 고차원적인 인위행위' 가 염세주의를 말한다.
삶의 의지가 없는 것(의식을 초월)에서 벗어나려는 삶의 발버둥(인의행위)은 그 자체로 본다면 진정한 무의자연이다.
살고자 하는 욕구 그 자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2.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극복 동력이 염세주의이다.

 인터넷에 유명한 말인 "난 아마 안될꺼야" 라는 것이 패배주의 확산에 일조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유행어에
많은 사람들이 찬동했고 자신이 할 수 없거나 될 수 없는 것에 이런 어조의 댓글을 달았지만,
의도는 장난 반 진실 반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의 기본권 중 행복할 권리 추구는 누구에게도 있으며 내제되어 있는 인간 본연의 행위이다.
다시말해 난 아마 안될꺼야라는 것은 부럽다의 의미도 있지만 그 부럽다는 의미 이전에 깔린 베이스는 
나도 저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또는 할 수 있다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허무주의자나 패배주의자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노자는 상선약수, 즉 물은 지고의 선이고 도는 이 물과 같다. 라고 말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고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막상 이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을 노자는 안타깝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 말이야 말로 염세주의자가 가져야 할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괴로움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것. 더 나아가 실행할 수 실행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자 하는 것이 지금의 염세주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Posted by dir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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